용역업체에 돈 요구한 동대표 해임결의 ‘유효’
용역업체에 돈 요구한 동대표 해임결의 ‘유효’
동석한 다른 동대표의 대화 녹음 제보로 비위사실 드러나
해임된 동대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주장했지만 ‘기각’
경비·청소용역업체 대표에게 재계약 조건으로 돈을 요구한 정황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나 동대표에서 해임된 A씨가 자신에 대한 해임결의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천지방법원 민사13부(재판장 김동진 부장판사)는 최근 인천 남동구 소재 모 아파트 동대표였던 A씨가 입주자대표회의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동별 대표자 해임의결안 무효확인’ 소송에서 입대의에 대한 청구를 기각하고 선관위에 대한 청구는 부적법해 각하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6월경 실시된 A씨에 대한 해임투표는 선거인수 120가구 중 71가구가 투표에 참여해 찬성 60표, 반대 11표로 해임안이 통과됐으나 A씨의 이의제기로 관할관청이 해임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 시정명령을 내렸다. 해임투표 전에 A씨에게 충분한 소명기회를 주지 않았고 소명자료를 입주민에게 공개하지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아파트 선관위는 해임재투표에 들어갔고 관할관청이 지적한 내용을 보완해 재투표를 실시한 결과 이번에는 66가구가 투표에 참여, 찬성 57표, 반대 6표, 무효 3표로 해임안이 가결됐다.
그러자 A씨는 ▲녹취록의 경우 자신의 동의 없이 녹음됐기에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돼 해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점 ▲용역업체 대표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입대의 전임자들의 비위사실을 밝히기 위한 일종의 가장행위였고 실제 지급받은 돈도 없는 점 ▲다른 동대표 자녀의 결혼 축의금으로 50만원을 내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는 점 등을 주장하면서 자신에 대한 해임결의는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우선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여부와 관련해 “녹취록의 경우 동대표인 B씨와 C씨가 A씨와 용역업체 대표를 함께 만난 자리에 동석해 대화를 나누던 중 B씨가 대화내용을 녹음해 입대의에 제출한 것으로 이 녹음은 A씨의 대화에 참여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녹음해 유출한 것이고 입대의는 단지 이를 청취해 그 내용을 공개한 것에 불과하다”며 “입대의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의 판례(2013도16404)에 의하면 3인 간의 대화에서 한 사람이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경우 다른 두 사람의 발언은 녹음자 또는 청취자에 대한 관계에서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정한 ‘타인 간의 대화’라고 할 수 없어 이 녹음 또는 청취 및 그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하는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및 제16조 제1항에서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실질적인 해임사유와 관련해서는 “A씨는 동대표 B, C씨와 함께 용역업체 대표를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용역업체 대표에게 재계약 조건으로 4,500만원을 요구했고 2년 뒤 재계약까지 책임지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으며, 다른 동대표 자녀의 결혼 축의금으로 50만원을 내도록 요구했고 실제 용역업체 대표는 20만원을 지급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대화 참여자가 4명에 불과하고 대화가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사적으로 이뤄진 점, A씨와 B, C씨는 용역업체와의 재계약 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동대표인 점, A씨가 입대의 전임자들의 비위사실을 밝히기 위해 용역업체 대표에게 돈을 요구하는 가장행위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행동”이라고 봤다.
이로써 “A씨에게는 동대표 지위를 이용해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 이는 해임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관리규약에서 동대표가 용역업자 선정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경우를 해임사유로 정하고 있고 이는 동대표 지위를 남용해 용역업자로부터 부당이익을 취하고 그 과정에서 입주민들에게 불이익한 계약 등이 성사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며 “금품수수가 완료된 뒤 사후적으로 동대표를 해임하는 것뿐만 아니라 금품수수 전이라도 요구나 약속의 정황이 발견될 경우에도 해임할 수 있는 규정”이라고 해석했다.